브루스 윌리스와 아내 에마 헤밍 윌리스. 에마가 2026년 6월 자신의 50세 생일을 맞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했던 사진이다. / 사진=에마 헤밍 윌리스 인스타그램
영화 〈다이 하드〉에서 수많은 위기를 헤쳐가며 강렬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 배우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 71세).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 스타였던 그가 배우 생활을 중단한 것은 2022년이었다. 가족은 그해 3월 윌리스가 '실어증(Aphasia)' 진단을 받아 연기 활동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약 1년 뒤인 2023년 2월에는 구체적인 진단명을 공개했다. 전두측두엽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FTD)였다. 가족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브루스가 겪고 있는 질환의 한 가지 증상일 뿐"이라며 명확한 진단을 받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밝혔다.
디멘시아뉴스는 여러 차례 윌리스의 진단과 FTD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보도해 왔다. 하지만 그동안의 보도는 실어증과 FTD 진단, 이후의 근황이 중심이었다. 최근 에마 헤밍 윌리스(Emma Heming Willis)가 진단 전 처음 알아챈 남편의 변화부터 진단 이후 달라진 가족의 삶과 돌봄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미국신경과학회(American Academy of Neurology, AAN)가 제공하는 뇌 건강 정보 플랫폼 'BrainHealth.com'은 지난 9월 22일 에마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이에 앞서 17일에는 뇌 건강과 신경계 질환을 전문가와 당사자의 목소리로 다루는 'Brain Health Podcast'를 통해 에마가 남편에게 처음 나타난 변화부터 진단 이후 가족의 삶을 이야기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동안 공개됐던 FTD보다 한 단계 자세한 설명이다. 에마는 윌리스가 '원발성 진행성 실어증(Primary Progressive Aphasia, PPA) 형태의 FTD'를 진단받았다고 밝혔다. PPA는 뇌의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이 .차 손상되면서 단어를 떠올리거나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등의 언어 능력이 서서히 저하되는 신경퇴행성 증후군이다.
■ 어린 시절 말더듬 극복한?배우…다시 말을 더듬다
윌리스에게 언어 문제는 낯선 경험이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 심한 말더듬을 겪었다. 한 문장을 끝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였지만 학교 연극 무대에서 외운 대사를 연기할 때는 말더듬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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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연기를 공부하고 배우가 됐다.
그런 윌리스가 수십 년 뒤 다시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이다. 에마는 처음부터 신경퇴행성 질환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어린 시절 겪었던 말더듬이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전처럼 원활하게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이 조금씩 나타났다. 더구나 당시 윌리스 자신은 이런 변화에 크게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에마는 회상했다. 가족으로서는 이것이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발생하는 치매의 시작일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윌리스에게 처음 공개된 진단은 치매가 아니라 실어증이었다. 2022년 3월 가족은 그가 실어증으로 인지 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다며 40년 넘게 이어온 배우 활동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이후 추가 진단 과정을 거쳐 FTD 진단을 받았고, 2023년 2월 가족이 이 사실을 공개했다.
에마는 이번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돌아보며 중요한 차이를 짚었다. 실어증은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증상'이었다는 것이다.
■ '실어증'은 병명이 아니라 증상…그 뒤에 FTD가 있었다
실어증은 말하기와 듣기, 읽기, 쓰기 등 언어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상태를 말한다. 뇌졸중을 비롯한 다양한 뇌 손상이나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실어증이라는 사실만으로 원인 질환을 특정할 수 없다.
윌리스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원인이 분명해졌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에 따르면 전두측두엽질환은 주로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 신경세포가 손상되면서 발생한다. 이 부위가 위축되면서 행동과 성격, 판단, 언어, 운동 등에 다양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과 달리 초기부터 기억 저하가 가장 두드러진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어떤 뇌 영역이 먼저 영향받는지에 따라 행동 변화가 앞서기도 하고 언어 문제가 먼저 나타나기도 한다.
윌리스의 경과에서 두드러진 것은 언어 기능의 변화였다. 에마는 최근 팟캐스트에서 남편이 진단받은 FTD가 PPA 형태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PPA는 2022년 처음 공개됐던 '실어증'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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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이 언어 기능에 문제가 생긴 상태를 가리키는 증상이라면, PPA는 이러한 언어장애가 뇌의 신경퇴행으로 .차 진행되는 임상 증후군이다. 윌리스에게 처음 알려진 실어증은 이후 진단 과정을 거치면서 FTD와 관련된 PPA에 따른 언어장애였던 것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다만 PPA 역시 하나의 단순한 질환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NIA는 언어 양상과 원인 병리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일부 PPA는 알츠하이머병 병리와 관련되기도 한다. 따라서 윌리스가 어떤 세부 PPA 유형인지, 현재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를 공개된 정보만으로 추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현재 윌리스의 구체적인 임상 상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에마는 남편의 언어와 의사소통 능력이 크게 저하됐다고 밝히면서도 가족과의 정서적 교감과 기쁨을 나누는 순간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했다. 특히 '가족과 가까운 관계자' 등 익명의 소식통을 근거로 확인되지 않은 건강 상태를 단정적으로 전하는 보도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 60세 이전에도 나타나는 치매…직장과 육아 한가운데 찾아온다
FTD가 가족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발병 연령이다. 알츠하이머병이 주로 고령층에서 나타나는 것과 달리 FTD는 40~60대에서도 발생한다. NIA는 전두측두엽질환을 조기발병 치매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설명하며, 환자의 약 60%가 45~64세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자녀를 키우는 시기에 질환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도 FTD의 특징이다.
미국 전두측두엽변성협회(Association for Frontotemporal Degeneration, AFTD)는 진단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증상이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건강 문제 등으로 오인되기도 하고, 비교적 젊은 연령에서는 의료진이나 가족 모두 치매를 먼저 떠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AFTD가 제시한 자료에서는 FTD 진단까지 평균 3.6년이 걸리는 것으로 설명돼 있다.
윌리스 가족의 경험 역시 이런 진단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에마는 지난해 미국 ABC의 베테랑 방송인 다이앤 소여(Diane Sawyer)와의 인터뷰에서 윌리스가 과거 영화 촬영 현장에서 대사를 놓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나타났고, 집에서도 이전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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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에게는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사람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이었다.
에마 헤밍 윌리스가 가족돌봄 경험을 바탕으로 쓴 《The Unexpected Journey》(예기치 않은 여정). 2025년 9월 미국에서 출간됐으며 아직 국내에는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 사진=에마 헤밍 윌리스 인스타그램, Penguin Random House
■ 진단받고도 "몇 달 뒤 다시 오세요"…막막했던 가족
정확한 진단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 않았다. 에마는 FTD 진단 이후 가족에게 충분한 정보와 향후 돌봄에 대한 안내가 주어지지 않았던 경험을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해 왔다. 질환명을 들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현재 FTD의 진행을 멈추거나 완치하는 치료법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NIA는 행동 증상 관리와 언어·의사소통 지원, 물리·작업·언어치료 등 환자의 증상과 상태에 맞춘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PPA에서는 남아 있는 언어 능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사진이나 그림, 몸짓, 스마트폰 등 다른 의사소통 수단을 활용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에마에게 전환. 가운데 하나는 치매 돌봄 전문가 티파 스노우(Teepa Snow)를 만나 질환으로 변화한 뇌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윌리스의 행동을 '왜 저러지?'라고 바라보는 대신 질환으로 인한 변화와 남편이라는 사람을 구분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에마는 이를 통해 남편을 대하는 인내와 공감도 다시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험은 책으로도 이어졌다. 에마는 2025년 9월 《The Unexpected Journey: Finding Strength, Hope, and Yourself on the Caregiving Path》(예기치 않은 여정: 돌봄의 길에서 힘과 희망, 그리고 나 자신을 찾다)를 출간했다. 남편의 FTD 진단 당시 안내 책자 한 장을 받고 몇 달 뒤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던 그는 자신이 그날 받아보고 싶었던 책을 쓰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돌봄 경험에 전문가들의 조언과 연구를 더해 가족돌봄자가 환자와 자신을 함께 돌볼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을 담았다.
■ "다시 남편의 아내가 됐다"…별도 거처에 마련한 돌봄 체계
가족에게 가장 어려웠던 결정은 윌리스가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가족의 집과 가까운 별도의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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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결정은 2025년 공개된 뒤 일부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에마는 가족마다 상황과 돌봄 계획이 다르며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안전하고 적합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두 어린 딸에게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며 또래 아이들다운 일상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올해 9월 인터뷰에서 에마는 이 선택의 또 다른 의미를 이야기했다. 별도의 거처에 돌봄 체계를 갖춘 뒤 남편의 돌봄과 위기 상황을 관리하는 역할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고, 다시 남편의 손을 잡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내'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치매 가족에게 외부의 돌봄 지원을 받는 문제는 종종 죄책감과 연결된다. 가족이 직접 끝까지 돌보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치매가 중등도 이상으로 진행되면 필요한 돌봄의 수준과 방식도 달라진다. 특히 FTD에서는 언어뿐 아니라 행동이나 판단, 운동 기능 등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어 가족만의 힘으로 모든 돌봄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족 밖의 돌봄 지원을 선택하는 것을 가족 돌봄의 실패로 단정할 수는 없다.
브루스 윌리스와 가족들. 2023년 3월 윌리스의 68세 생일 당시 촬영된 가족사진으로, 아내 에마 헤밍 윌리스가 같은 해 추수감사절을 맞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다시 공개했다. / 사진=에마 헤밍 윌리스 인스타그램
■ 치매를 돌보다 자신의 건강검진까지 미뤘다
이번 인터뷰에서 에마가 강조한 또 하나의 문제는 '돌봄자의 건강'이다. 그 자신도 윌리스의 치매를 돌보는 동안 유방암 검진과 정기 건강검진을 미뤘다고 밝혔다. 가족을 돌보는 일이 삶의 중심이 되면서 자신의 건강은 뒤로 밀렸다.
이후 그는 자신을 돌보는 것이 남편을 돌보는 일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면과 운동, 식생활, 사회적 관계 등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도 의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두 딸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윌리스가 FTD 진단을 받았을 당시 에마와의 사이에 낳은 두 딸은 10세와 8세였다. 에마는 아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아이들의 연령에 맞게 설명했다.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어져서 행동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질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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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치매가 환자 한 사람만의 질환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관계와 역할을 변화시키는 질환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다이 하드' 스타의 진단 공개가 바꾼 것
윌리스 가족이 자신의 질환을 공개한 이후 FTD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AFTD에 따르면 가족이 2023년 2월 FTD 진단을 공개한 뒤 한 달 동안 협회 홈페이지에는 약 120만 명이 방문했다. 이는 직전 한 달의 약 19배에 달한다. FTD 관련 상담을 제공하는 헬프라인의 전화와 이메일 문의도 100% 이상 증가했고, AFTD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416명에서 6,700명 이상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윌리스의 진단 공개가 FTD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였고, 에마는 이후 가족 돌봄자의 경험과 지원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에마의 활동도 진단 공개에서 멈추지 않았다. 올해 3월 'Emma & Bruce Willis Fund for Dementia Research and Caregiver Support'를 출범시켰다. FTD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초기 연구를 지원하는 한편 가족 돌봄자에게 정보와 휴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첫 지원 대상에는 AFTD가 포함됐다.
윌리스와 에마는 지난 3월 AFTD로부터 FTD 공동체에 탁월한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Susan Newhouse & Si Newhouse Award of Hope'를 받았다. 가족의 진단 공개가 FTD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였고, 에마는 이후 가족 돌봄자의 경험과 지원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윌리스에게 말은 배우로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도구였다.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말더듬을 연기를 통해 넘어섰고,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대사와 인물로 관객을 만났다. 그리고 수십 년 뒤 다시 나타난 언어의 변화는 결국 FTD 진단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가족은 이제 그가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기를 요구하기보다 달라진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 에마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치매 이후의 삶을 질병과 상실만으로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슬픔과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가족에게는 여전히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웃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 가족의 지난 4년은 한 유명 배우의 투병기를 넘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찾아올 수 있는 치매를 어떻게 발견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치매가 진행되는 동안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다. 슬픔과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