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좀 더웠다고 다들 당장 죽을 것처럼 구네요. (…) 아름다운 날씨를 즐기세요. 인생을 즐기세요!”
벨기에의 테오 프랑켄 국방장관은 국민이 때 이른 폭염에 허덕이던 6월 중순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올렸다. “곧 수영장과 시원한 (벨기에산) 스텔라아르투아 맥주 한잔, 바비큐 사진을 올리겠다”고도 자랑했다.
그러나 당시 벨기에 왕립기상연구소(KMI) 관측소에 기록된 낮 최고 기온(33.4도)은 ‘좀 더운’ 정도를 넘어, 6월 중순 기준 역대 벨기에 최고치였다. 30도를 넘나드는 폭염은 ‘이틀’이 아니라 6월 말까지 12일 동안 이어졌다. 벨기에 정부는 이 기간 자국에서 고온 등 영향으로 평년보다 1222명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본다. 프랑켄 장관의 속 편한 발언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26년 여름 유럽은 기후변화의 민낯을 마주했다. 서유럽은 역대 가장 더운 6, 7월을 경험했고 뒤이어 산불과 가뭄에 신음했다. 기후변화는 일상의 안락함만이 아니라 인간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각국의 정책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온난화 양상을 추적하는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7월 서유럽에서는 장기간 고온·건조한 날씨가 이어졌다.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 7월이었다”고 알렸다. 6, 7월 서유럽 지표면 평균 기온은 21.62도로 1991∼2020년 평균을 2.79도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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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최고 기록인 2022년(20.73도)보다도 0.89도 높았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유럽 전역을 휩쓴 올 폭염이 관측 기록으로도 ‘역대급’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일찍 시작된 더위에 땅이 건조해지자 7월부터는 산불이 기승이었다. 영국 기후연구단체 카본브리프는 유럽산불정보시스템(EFFIS) 데이터를 분석해 올해 들어 7월 말까지 유럽연합에서 산불로 43만5000㏊가 불탔다고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 파리 면적의 41배이며, 2022년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큰 규모다. 8월에도 벨기에 동부 오트파뉴 삼림에서 수도 브뤼셀 면적과 맞먹는 3000㏊가 타는 등 위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초여름만 해도 더위 농담을 하던 각국 정치인들은 기후변화를 진지한 주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극우 정파를 중심으로 제기되던 ‘지구온난화 부정론’이 여름을 거치며 잦아든 게 대표적이다. 민족주의 정당 ‘새플레미시연대' 소속 프랑켄 장관은 오트파뉴 산불이 한창이던 17일 소셜미디어에 “기후변화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국가 차원의 산불대응계획을 만들겠다고 했다.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 역시 최근 보도자료에서 탈탄소화를 위한 “파리기후협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후변화가 생존을 위협한다는 여론 인식이 널리 퍼진 결과다. 프랑스 싱크탱크 데스탱 코뮌이 26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프랑스 국민의 86%는 가뭄이 기후변화의 결과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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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는 폭염을, 77%는 산불을 기후변화 결과로 봤다. 이 기관의 로랑스 드 네르보 사무총장은 르몽드에 “기후변화는 그간 멀리 떨어진 현실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대다수 사람에게 구체적인 현실이 됐다”며 “이번 여름이 (인식의) 전환.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각국에서는 시민 생활과 도시 구조를 더운 기후에 맞게 ‘적응’시키는 정책들이 쏟아진다. 스페인 정부는 6월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도서관·관공서·공원 등 공공시설에 폭염 때 대피할 수 있는 냉방 쉼터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7월 프랑스는 환경 정책 재원인 ‘녹색 기금’을 활용해 공공건물과 학교에 천장 선풍기와 에어컨 등 냉난방 시설을 보강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영국 런던시는 공공주택과 병원·돌봄시설을 중심으로 냉각 설비를 갖추겠다고 했다. 독일 집권연정에 참여 중인 사회민주당은 ‘기후변화 적응과 자연보호’를 연방정부의 책임 과제로 규정하는 헌법 개정을 최근 제안했다.
그러나 기후대책의 또 다른 축인 ‘완화’ 정책은 여러 나라에서 도리어 후퇴 중이다. 완화는 온난화 근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 등을 제한해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는 조치다. 7월 독일은 2023년 만든 난방법을 고쳐, 신규 난방시스템이 에너지원의 65% 이상을 재생가능에너지로 쓰도록 한 조항을 없앴다. 석유·가스보일러 설치를 허용해 건물에서의 화석연료 퇴출을 포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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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원래 본토에서의 석탄 발전을 2025년까지 퇴출하려 했지만 4월 법을 개정해 이 시。을 2038년 연말로 미뤘다. 여름 폭염 뒤에도 이를 다시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정치인들에게 기후변화 완화가 인기 없는 건 적응 대책보다 효과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긴 탓이다. 탄소 배출을 줄여 기온을 낮추기까지는 정치인 임기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고령화된 유럽 각국이 국가 부채와 재정난에 시달리는 것도 기후변화 대응이 뒷전이 된 배경으로 꼽힌다. 프랑스자연환경연합(FNE)의 장프랑수아 쥘리아르 대표는 “많은 후보가 여전히 이 문제에선 얻을 표보다 얻어맞을 공격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유리한 의제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남동부 지롱드 일대에 번진 산불로 7월26일 보르도 중심가가 매캐한 연기에 휩싸인 모습. ‘달의 항구’로 불리는 사진 속 가론강변은 매년 여름 피서객과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 없지만, 이날은 산불 영향으로 인파가 드물다. AFP 연합뉴스
과학자들은 기후 정책에 ‘냉방 강화’만 남아서는 올해같은 폭염이 또 닥친다고 경고한다. 프랑스 기후학자 장 주젤은 르몽드에 “지금 (북반구 일부가 겪는) 상황은 과학자들이 1990년대부터 경고한 내용과 정확히 같다. 폭염이 더 강해지고 더 일찍 시작하며, 더 오래 지속되고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실재 여부를 따지는) 과학적 논쟁이 아니라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가 됐다”며 “적응과 완화 (모두의) 방향에서 사회를 어떻게 조직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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