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2008년부터 인재 유치 전략인 ‘천인계획’을 시행해오고 있다. 높은 연봉과 무제한 연구비를 제시해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자들을 중국으로 빨아들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도전이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중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연구자들을 유치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인프라를 준비해왔다.
이우근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는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명 ‘863·973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중국의 첨단기술·기초과학 기술 개발 계획이 수십 년째 이어져 오면서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토양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중국 칭화대에서 20년 가까이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온 반도체 전문가다.
실제 중국은 한 번 과학 정책이 만들어지면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1980년대, 1990년대에 만들어진 과학기술 정책이 단절 없이 수십 년 넘게 보완·발전하며 추진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교수가 미국 IBM에서 근무하다 중국 칭화대 교수직을 수락해 중국에 정착하게 된 2006년에도 이미 10~20년 넘게 국가 주도 기술 개발 계획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1986년 3월 덩샤오핑 전 중국 국가주석의 승인으로 시작된 863계획은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과의 첨단기술 격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도입됐다. 정보기술(IT), 반도체, 바이오, 신소재, 자동차, 우주항공 등 분야를 중심으로 대학 현장의 연구 성과를 빠르게 산업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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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3월 입안된 973계획은 기초과학 육성에 초。을 맞췄다. 기초물리·신소재·생명과학 등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중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두 정책은 2016년부터 ‘국가중.연구개발계획’으로 통합돼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기전략을 새로 짜느라 바쁜 한국과 달리 제대로 된 중장기 전략이 작동한 덕에 중국이 이토록 빠르게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천인계획 역시 1990년대 처음 도입한 ‘백인계획’을 다듬어 2008년 확대 시행한 것이다.
이 교수는 교육 현장의 다양한 정책이 중국의 기술 패권을 지탱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1998년 5월 도입된 985공정은 중국에 세계 일류 대학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다. 또 중국판 아이비리그 육성 프로그램인 ‘C9리그’도 있다”며 “무엇보다 2017년에 시작된 ‘쌍일류’ 정책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쌍일류 정책은 한국처럼 대학 전체의 종합 순위만 신경 쓰는 것을 넘어 일류 대학과 일류 학과를 동시에 지향하는 중국만의 독특한 정책이다. 이 교수는 “제가 칭화대에서 교편을 잡은 당시 서울대와 칭화대의 글로벌 순위는 40위 내외로 엇비슷했다”며 “그런데 칭화대는 매년 순위가 올라 이제 세계 15위권인 반면 서울대의 위치는 여전하다. 칭화대는 전공별로 세계 10위권인 학과들도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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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차세대 주자를 키우는 정책도 중국이 효율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이 교수는 “중국에는 신촹(新創) 정책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 기업이 특정 반도체를 국산화하면 정부 기관이 일정량 구매해주는 방식”이라며 “초반 수익 창출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제품을 실제 검증하고 개선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역할까지 나라가 해주는 형태”라고 말했다. 마치 1990년대 정부가 한글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준 덕에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교수는 “투자를 하는 것도 좋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자생력을 갖추도록 돕는 것도 현명한 전략”이라며 “최근 반도체 학회에서도 이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방식이 특히 시스템반도체 육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중국은 팹리스 업체가 4000곳에 달하고 대만은 미디어텍이라는 세계 5위권 기업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면 한국은 시스템반도체 생태계가 너무 취약하다”며 “미국 브로드컴도 교수 한 명이 케이블 모뎀 특허를 기반으로 창업한 뒤 여러 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팹리스에서는 다양한 기업들이 뛰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메모리반도체나 파운드리 제조 영역에서는 초격차 기술을 가진 소수 기업이 핵심이지만 팹리스와 시스템반도체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도록 신생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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