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한 번씩 핑 돌더라고요. 아찔하긴 하지만 멈추면 돈을 벌 수 없으니 쉴 수가 없죠."
지난 10일 오전 9시께 서울 광진구 중곡동. 코웨이 방문.검원 도희은씨(50)는 살균수기와 청소도구 등으로 채워진 15㎏짜리 가방을 들쳐 메고 고객의 집으로 향했다. 이마에 두건을 질끈 동여매고 목에는 손수건까지 둘렀지만, 금세 뺨을 타고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도씨는 "땀냄새가 난다고 민원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며 "여름에는 여벌 옷과 양말까지 챙겨 다닌다"고 설명했다.
물류업에 종사하다 허리 질환으로 방문。검원이 된 지 8년째. 도씨는 능숙한 솜씨로 정수기와 공기청정기를 .검했지만 더위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폭염특보가 발효된 이날도 무거운 가방을 메고 뙤약볕 아래를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출근할 땐 장비를 차량에 싣고 나오지만 유류비가 지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폭염 대책은 식용 포도당과 얼린 생수 한 병이다.
방문.검원의 신분은 특수고용노동자(노무제공자)다. 근로계약이 아니라 업무 위수탁계약을 맺고 건별 수수료를 받는 형태다. 1시간 새 벌써 3번째 방문지에 도착한 도씨는 "고객과 약속된 시간에 늦으면 페널티를 받기 때문에 숨 돌릴 틈이 없다"며 "최저임금이 아무리 올라봐야 우리는 수수료를 받는 게 전부니까 아무리 더워도 먹고살려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폭염을 피하는 순간 수입이 끊기는 굴레는 배달 노동자도 마찬가지. 이날 오후 3시께 광진구 이동노동자 쉼터를 찾은 40대 기사 유모씨는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땀 흡수가 잘 되는 얇은 반팔과 팔토시, 목토시까지 둘렀지만 이미 흠뻑 젖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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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에 출근한 뒤 처음 쉰다는 그는 "너무 더우니까 식욕이 안 생겨서 물밖에 안 들어간다"며 숨을 몰아쉬었다.
초등학교 5학년생 아들을 뒀다는 그는 "국·영·수 50만원, 합기도 16만원… 학원비만 이래저래 월 100만원 넘게 든다"며 "요즘 버스 옆에 설 때면 살이 타들어 가는 듯 뜨겁지만 아들을 생각하며 버틴다"고 했다. 유씨의 손끝이 가리킨 종아리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스마트폰에선 폭염특보 알림과 배달 콜이 함께 울려댔고 유씨는 이내 헬멧을 들고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나섰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도로 위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 배달의민족·쿠팡이츠 등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상 할증'은 불과 500원. 이마저도 최대치다. 100~200원에 숨을 헐떡이며 폭염 속을 내달려야 하는 것이다. 일부 플랫폼은 데이터 오류로 수수료를 누락하는 일도 있다. 배달 노동자 역시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라 더위를 피할지, 수수료를 벌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사람 잡는 더위' 두 가지 생존 선택지
폭염은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누구나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을 멈추는 순간 소득이 줄어드는 야외·이동 노동자는 건강과 생계 유지라는 두 가지 생존의 기로에 내몰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온열질환자는 3351명, 사망자는 31명으로 집계됐다. 연령별로 보면 질병청이 별도 산출한 65세 이상 노인 인구에 1210명(36.1%)이 몰렸다.
폭염은 노인뿐 아니라 경제활동이 활발한 30~50대 인구에도 위협적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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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세대만 892명(26.6%), 50대까지 합치면 1419명(42.3%)이다. 온열질환자 10명 중 4명을 차지했다.
온열질환자의 직업과 발생 장소를 보면 노동 현장의 위험이 더욱 뚜렷하다. 무직·노숙인을 제외하면 단순노무 종사자가 677명(20.2%)으로 가장 많았고 농림어업 종사자가 235명(7.0%)으로 뒤를 이었다. 장소는 실내외 작업장이 1086명(32.4%), 길가 428명(12.8%), 논밭 401명(12.0%) 등 순이었다. 생계를 위해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이들에게 폭염이 더 위협적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같은 폭염이라도 노동 형태에 따라 더위를 피할 여지가 다르다는 。이다. 지난해부터 체감온도 33도 이상 폭염작업에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부여하도록 사업주의 보건조치가 강화됐다. 그러나 고정된 사업장을 벗어나 고객을 찾아다니는 방문。검원, 길 위의 배달 노동자처럼 일터가 고정돼 있지 않은 노동자는 사정이 다르다. 예컨대 배달 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쉼터 정보 제공, 생수 지원 등에 그친다.?이들에게 일을 멈추는 것은 곧 소득 감소를 의미한다. 결국 폭염의 위험을 가르는 것은 얼마나 더운지보다 일을 멈출 수 있느냐는 선택지의 차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30~50대는 건설·도로 작업이나 배달 등 야외 활동이 많은 노동에 종사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며 "WHO 발표처럼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 늘고 있는 。을 고려해 노동 조건에서 폭염을 예방하거나 방지할 수 있도록 사업장 규정이나 관리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특히 "말이 기상 할증이지, 결국 폭염 근무를 부추기는 것"이라며 "특고 노동자는 사실상 개인사업자 형태인 만큼 별도의 규제와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번씩 핑 돌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