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마포구 픽셀로직코리아 스튜디오에서 김정령 더빙 PD가 더빙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물어뜯어요!" "싸워라!" "저 정말 위험한 놈이에요, 아시죠?"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픽셀로직코리아 스튜디오에서 박상훈·최우성 성우가 화면을 보며 거친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서바이벌 예능 '피지컬: 100 멕시코'에서 격투기 선수 출신 출연자인 레이지 보이와 훌리오 코르도바의 일대일 데스매치, 공뺏기 게임 장면을 더빙하는 중이었다. 출연자의 움직임과 감정에 맞춰 대사를 주고받는 성우들에게 김정령 더빙 PD는 "발음 체크 좀 할게요" "마이크 터졌는지 확인" "목소리가 좀 잠겼어요" 등 연신 피드백을 던졌다.
강한 신체 능력을 갖춘 참가자 100명이 극한 대결을 통해 최후의 1인 자리를 가리는 '피지컬:100'은 한국 오리지널 예능을 기본 포맷으로 삼아 멕시코,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 현지판이 제작됐다. 이날 한국일보가 참관한 장면은 '피지컬 종주국' 시청자를 위한 멕시코 편의 한국어 더빙 작업이었다. 번역, 각색, 성우 캐스팅, 편집, 믹싱을 망라하는 더빙 작업은 시리즈당 3~4개월가량이 소요된다.
23일 서울 마포구 픽셀로직코리아 스튜디오에서 왼쪽부터 박상훈 성우, 최우성 성우가 '피지컬: 100 멕시코'를 더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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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제공
한 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가쁜 더빙 작업의 밑바탕은 넷플릭스가 이들 외주 제작진에게 제공한 글로벌 스탠더드 가이드. 김 PD는 "예전에 더빙 현장에서 받았던 주문이 '원본과 비슷하게 해주세요' 정도였다면, 넷플릭스는 작품의 세계관을 포함한 특성을 감안하면서 호흡까지도 세밀하게 연출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더빙 파트너사인 픽셀로직코리아의 손민제 프로젝트 매니저는 원본의 대사와 입모양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고, 작품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각색 작업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피지컬: 100 멕시코'의 경우 스페인어 원문을 영어로 옮긴 중간 번역본 '피벗 랭귀지'를 활용해 한국어 대본을 제작한다고.
음향 작업에도 구체적 지침이 전달된다. 이재원 픽셀로직코리아 오디오엔지니어는 "전 세계 공통으로 같은 효과가 들어가야 되는 경우가 있어 작품에 따라서는 녹음 현장 영상과 편집 매뉴얼까지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넷플릭스 시리즈 '가스인간' 더빙에는 여성 캐릭터가 물에 빠지는 장면의 음향을 구현하기 위해 마이크 위치와 입에 물을 머금는 방법, 녹음 방향 등을 촬영한 영상이 공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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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랑켄슈타인' 더빙 현장에는 괴물 목소리를 만드는 방법을 담은 10분가량의 영상이 전달됐다. 이 엔지니어는 "레이어를 각각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그 비율까지도 상세한 정보가 공유된다"며 "많은 언어로 더빙되더라도 전 세계 시청자가 동일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서울 마포구 픽셀로직코리아 스튜디오에서 이재원 픽셀로직코리아 오디오 엔지니어가 더빙 음향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원작과 똑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게끔 하겠다.' 넷플릭스가 더빙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넷플릭스가 협업하는 전 세계 전문 파트너사 수는 더빙 부문 150개사, 화면해설 부문 68개사에 이른다.
더빙 고품질화는 콘텐츠 세계화의 단면이기도 하다. 넷플릭스가 올해 5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넷플릭스 시청자가 거주국이 아닌 곳에서 제작된 작품을 시청하는 비율이 지난해 전체 시청의 70%를 차지했다. 비영어권 영화 및 시리즈가 전체 시청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10년 전 10% 미만에서 지난해 33% 이상으로 증가했다.
K콘텐츠는 더빙판 확대의 대표 수혜자다. 2024년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예능 시청의 40% 이상은 더빙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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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브라질·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유럽·중동·아프리카는 더빙을 선호하는 시청문화권으로 분류된다. 더빙 친화적 시청자 확대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넷플릭스 측의 설명이다. 자막을 읽는 동안 놓치기 쉬운 배우의 표정이나 세부 연출을 온전히 감상하는 데 유리하다는 전통적 강.에 더해, 최근에는 멀티태스킹에 익숙한 시청자를 중심으로 더빙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
더빙보다 자막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던 한국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도 애니메이션과 키즈 콘텐츠 등 더빙 수요가 강한 부문은 물론이고 다큐멘터리 '고든 램지로 살아가기', 시리즈 '에놀라 홈즈 3', 영화 '워 머신: 전쟁 기계' 등에도 한국어 더빙이 속속 추가됐다. 어린이, 고령층, 외국인, 시각장애인 등 자막으로 작품을 향유하기 어려운 계층에게 더빙은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축적된 장르별 시청 수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어 더빙 여부를 결정한다.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콘텐츠에는 가능한 한 더빙을 제공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넷플릭스는 작품당 평균 10개 언어, 최대 36개 언어로 더빙을 제공한다. 더빙 작업은 글로벌 스튜디오, 현지 전문가, 성우 등을 포함해 작품당 50~60명 이상의 제작 인력이 투입되는 대규모 협업 프로젝트다. 넷플릭스가 이 과정을 원작의 감정을 새로운 언어로 구현하는 '제2의 제작'이라고 자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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