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구에서 태어난 아이는 총 3만2천477명이었다.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축복 속에서 세상에 나온 이른바 '밀레니엄 베이비'들이다. 그로부터 26년이 흐른 현재,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번듯한 직장인이 됐다. 그러나 장밋빛 기대와 달리 이들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은 월급과 월세, 자동차 할부금, 치솟는 생활비 사이의 빠듯한 사투다. 대구에서 근무하는 2000년생 직장인 배주원(26) 씨의 하루를 통해, 지난 26년간 달라진 대구 경제의 이면과 지역 청년들의 현실적인 자립 가능성을 짚어봤다.
◆오전 7시, 눈뜨자마자 시작되는 숨 가쁜 '지출 계산'
대구의 한 원룸, 알람 소리에 눈을 뜬 배 씨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휴대전화로 날짜부터 확인한다. 월급날과 월세 납부일, 자동차 할부금 결제일이 한 달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됐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 종합브랜딩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배 씨의 월급은 190만 원 안팎이다. 이 중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매달 월세로 43만 원이 빠져나가고, 출퇴근용 차량의 할부금이 42만 원이다. 기름값과 유지비를 더하면 차량 비용만 월 60만 원에 달한다. 주거비와 교통비로만 이미 103만 원, 즉 월급의 약 60%가 증발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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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87만 원으로 관리비, 공과금, 통신비, 식비를 해결하다 보면 저축은 사치가 된다. 갑작스러운 병원비나 경조사비라도 생기면 통장은 여지없이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배 씨는 "취업만 하면 매달 차곡차곡 돈을 모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빠져나갈 돈을 방어하기에 급급하다"며 "독립은 했지만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는 안정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과거 부모 세대에 비해 명목임금은 올랐지만 주거비와 생활물가가 폭등하면서 청년들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쪼그라들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대구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000년 63.668에서 지난해 116.55로 83.1% 상승했다. 특히 최근의 체감물가는 잔인할 정도다. 지난 6월 대구의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5% 올랐고, 교통 부문은 무려 10.9%나 상승했다. 휘발유(24.8%)와 경유(36.5%)의 가파른 오름세는 배 씨 같은 청년 직장인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오전 9시, 외형은 커졌지만 소득은 제자리인 지역 일자리
배 씨가 일하는 마케팅·콘텐츠 분야처럼 대구의 산업 구조는 과거 섬유·기계 중심에서 서비스 및 신산업으로 외형을 넓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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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사업체 수는 2000년 약 17만 4천 개에서 2024년 28만 6천 개로 64.1% 증가했고, 종사자 수도 53.6% 늘었다. 300인 이상 대기업 및 중견기업 사업체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이 청년들이 체감하는 소득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2025년 기준 대구 상용근로자의 월평균 급여액은 332만2천106원으로, 전국 평균(385만8천876원)보다 53만 원 이상 적다. 서울(427만341원)과의 격차는 무려 100만 원에 육박한다.
배 씨는 "일 자체는 보람 있고 대구에도 세련된 회사가 많아졌지만, 이 임금으로 장기적인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지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결국 안정적인 임금 상승과 경력 비전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대구의 청년들은 다시 고향을 떠나고 있다. 지난해 대구의 20대 인구는 4천884명 순유출되었으며, 특히 배 씨와 동갑내기인 2000년생(25세 당시 기준) 청년만 한 해 동안 1천 명 넘게 대구를 빠져나갔다. 지역이 공들여 키운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취업과 동시에 수도권으로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심시간과 퇴근길, '자립의 사다리'는 부서졌는가
.심시간이 되자 배 씨는 식당으로 가는 대신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낸다. 하루 。심값과 커피 한 잔에 1만 5천 원, 한 달이면 30만 원에 달하는 돈을 아끼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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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의 음식·숙박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김밥 한 줄, 해장국 한 그릇 사 먹는 것도 사회초년생에게는 큰 부담이 됐다.
퇴근길, 자동차 안에서 숨을 돌리던 배 씨는 가끔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을 켜보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화면을 닫는다. 현재 소득에서 매달 30만 원씩 꼬박 10년을 모아도 3천600만 원이다. 집값은커녕 전세 보증금 마련도 아득한 시간이다.
전형적인 자립 경로인 '취업→독립→저축→내 집 마련'의 사다리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첫 단추인 취업과 독립에는 성공했으나, 치솟는 물가와 낮은 지역 임금 탓에 '저축'과 '자산 형성'이라는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문턱이 너무나도 높아진 까닭이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해 소비하고 자산을 형성해야 지역 경제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라며 "단순한 일자리 숫자 채우기 식 정책에서 벗어나 임금 격차 해소, 주거·교통비 부담 완화 등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주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현재의 청년들은 경제적 풍요 속에서도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천년의 환호 속에 태어나 어엿한 사회인이 된 2000년생 밀레니엄 베이비들. 매일 성실히 출근 도장을 찍으며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들이 마주한 대구에서의 현실은 평범한 저축조차 허락하지 않는 차가운 영수증으로 돌아오고 있다.
시간이 되자 배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