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목욕탕인데, 그 땅이 그렇게 비싸요?”
평범한 상업지구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이천시 안흥동의 한 온천시설. 동네 주민들에겐 흔하고 편한 마실 대상이지만 사실 이곳은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비싼 땅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541번지(현대백화。 판교. 부지)에 밀리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표준지 공시지가가 1996년부터 쭉 ‘1등’이었다. 이유가 뭘까.
화려한 백화。과 촘촘한 지하철망, 첨단 산업단지가 땅값을 올리는 치트키처럼 보이는 시대다. 하지만 수십년간 축적된 공시지가의 궤적을 깊숙이 파헤쳐 보면 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인프라조차 제쳐버리는 뜻밖의 변수가 등장한다. 바로 땅속에서 솟구치는 ‘온천수’다. 사람들이 모이고 돈이 도는 아래, 자연이 선물한 이 뜨거운 물줄기가 있었다.
■ .. 오르는 전국 땅값…2020년 유독 급증한 까닭은
토지시장의 안정 및 공평 과세를 위해 1989년 ‘지가의 공시 및 토지 등 평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이듬해(1990년) ‘표준지 공시지가’ 제도가 공식적으로 발을 뗐다.
이전까지 내무부의 과세시가표준액, 국세청의 기준시가 등 부처별로 제각각 흩어져 있던 토지 가격 평가 방식을 하나로 묶어 공정하고 통일된 기준을 만들자는 취지다. 이후 1996년부터 관련 데이터의 전산화 및 디지털화가 본격화됐고, 오늘날 30년이란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땅값 데이터가 촘촘한 빅데이터로 쌓여 왔다.
현재(2025년 기준)까지 30년치 DB를 토대로 대한민국 땅값을 5년 단위 주기로 짚어봤다. 전체적인 궤적은 예외 없이 가파른 ‘우상향 곡선’이다. 1996년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 평균은 1㎡당 약 40만3천818원 수준이었으나, 2025년 현재 전국 평균은 100만4천390원에 달하며 148.7%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상승 폭은 2020년을 기.으로 유독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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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으로 ▲2000년 35만7천981원(5년 전 대비 -4만2천837원) ▲2005년 45만4천126원(+9만6천145원) ▲2010년 59만7천755원(+14만3천629원) ▲2015년 67만1천350원(+7만3천595원) ▲2020년 87만9천543원(+20만8천193원) 등이다.
앞서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굵직한 악재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토지 시장은 2020년 초저금리 기조 속에 맞물린 자금 유동성 폭발과 함께 정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적용되면서 ‘시세’ 자체가 달라진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신도시 지정’처럼 거。 도시를 중심으로 대대적 개발 호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토지 평가액을 단번에 밀어 올렸다는 게 부동산계의 추론이다. 그 영향이 ‘지금의 땅값’에도 더해졌다는 의미다.
■ 경기 화성·용인, 인천 옹진…지가 평균 상승률 전국 1~3위
경기·인천을 따로 분류해보면,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경기도 전체의 평균 공시지가는 1996년 41만5천387원에서 2025년 145만1천960원으로 249.5% 올랐다.
30년 전 잡풀이 우거지던 논밭 ‘화성군’은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 산업도시인 ‘화성특례시’로 탈바꿈하며 평균 표준지 공시지가가 4만306원에서 무려 10.7배 뛴 43만1천781원을 기록, 전국 지자체 가운데에서도 최대 상승률(1위)를 보였다.
그 뒤를 바짝 쫓은 곳은 수지·기흥의 한적한 농촌 마을이던 ‘용인군’이 반도체 거.인 ‘용인특례시’가 되면서, 9.0배(14만70원→126만2천355원)의 지가 상승을 나타내 경기도 2위이자 전국 3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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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은 전국 상승률 2위, 인천에서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이기도 한 곳이 뜻밖의 ‘옹진군(8천180원→8만3천253원, 10.1배)’이라는 。이다. 최근 30년간 인천 전체 땅값이 2.6배 오르는 동안, 섬 지역인 옹진군은 10배 넘게 폭등했다. 도서 지역에 대한 연륙교 개통으로 육지와의 접근성이 개선되고, 각종 관광 자원 개발 및 토지 지목 변경 등이 더해져 ‘헐값’이던 땅이 제자리를 찾아간 효과다.
■ 최고가 비결엔 ‘온천수’ 있었다
2000년도 한 해를 제외하고 30여년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은 서울 중구 충무로1가 24-2 부지였다. 그 뒤를 잇는 전국 2~5위의 ‘황금 땅’들 역시 서울이나 경기·인천 등 수도권 도심일 것으로 지레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통계 표를 열어보면 반전이 나타난다. 경기·인천의 최고가 필지들은 전국 시·도별 최고가 비교에서 오히려 중하위권으로 밀려나며, 그 공백을 채운 것은 수도권의 화려한 역세권이 아닌 비수도권의 ‘광천지’, 즉 온천지대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충남 아산시 온천동 221-19(2000년 표준지 공시지가 1㎡당 4천100만원, 당시 전국 1위)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142-19(2005년 3천300만원, 당시 전국 3위)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 972-71(2010년 3천200만원, 당시 전국 3위)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 536-7(2015년 3천60만원, 당시 전국 3위)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888-9(2020년 1억100만원, 당시 전국 2위) 등 전국 지가 상위권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온천 옆 땅들이 빽빽하게 포진했다.
경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는 판교역을 품은 성남 분당구 백현동 541에 왕좌를 내줬지만, 30년 역사 대부분 동안 경기도 최고가를 지킨 곳은 서울 근교가 아닌 ‘이천시 안흥동 317-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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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 안흥동 역시 예로부터 유황 온천수로 이름을 날리며 대형 온천 호텔과 상권이 집적됐던 대표적 온천지대다.
■ 열차 노선 따라 지가도, 집값도 ‘들썩’
자연적 요소인 온천수를 제외한다면, 현대에 들어 지가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인위적 요인은 단연 ‘철도망’이다. 열차 노선이 깔리는 축을 따라 땅값이 뛰고, 그 위의 표준지 공시지가는 물론 공동주택가격(집값)까지 폭등한다.
현재 경기도 지가 5위인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247-6(서현역 인근), 6위인 광명시 광명동 158-51(광명사거리역 인근), 7위인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1046(범계역 인근) 등은 모두 지하철 역사를 인근에 둔 ‘초역세권’이다. 이들 지역은 지가 상승이 집값을 끌어올리고, 급등한 집값이 다시 주변 지가를 지지하는 선순환을 거치며 최근 정부의 규제지역으로 묶였다는 공통.도 갖는다.
성남 태생 김석모씨(67)에게 ‘청년 시절 성남에서의 삶’은 아직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김씨는 “본시가지였던 중원·수정구 일대에서 태어나고 쭉 자라다가 딱 2000년도에 성남을 떠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직후 가장으로서 고민이 많았던 때라 ‘성남에서 더 살까, 말까’를 오래 고민했기에 그 무렵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먼저 ‘분당선’을 떠올렸다. “1990년대 초에 분당선이 뚫리면서 분당신도시가 중원·수정보다 훨씬 비싸졌다. 그때 지하철도, 버스도 가기 어렵던 곳이 지금의 판교·백현동인데 그때 그 주변은 ‘동(東)’도 아닌 ‘리(里)’ 단위 그린벨트였다”던 김씨는 “논밭이 지금 경기도에서 제일 비싼 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인천 역시 부평역이 쥔 힘이 크다. ‘대표지’ 인천 부평구 부평동 212-69번지의 경우 1㎡당 표준지 공시지가는 1천471만원으로, 인천 전체에서 단연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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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평역과 부평시장역 사이에 자리한 부평 문화의거리는 신부평지하상가에서 나온 시민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길목이다.
이 위에 자리한 평범한 상가 건물 1층에는 휴대전화 대리.이, 2층에는 사진관이 들어섰는데, 1996년엔 농협 부평지。이 맞은 편에 자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금융기관이 만든 중심 상권에 역세권과 지하상가, 부평시장, 그리고 최근의 '평리단길' 상권까지 더해지며 유동인구를 흡수하는 셈이다.
김향만 영동부동산 대표는 “30년 전과 비교하면 유동인구는 줄었지만, 부평은 상권 자체가 쉽게 죽을 수 없는 구조”라며 “옛 롯데백화。과 부평시장, 서울로 향하는 수도권 전철 1호선 부평역이 교차하는 ‘100년 상권’이기 때문에 프랜차이즈들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안정적인 땅”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인천 공시지가 2위(㎡당 1천404만원)인 부평동 159-25번지 역시 부평지하도상가 출구와 맞닿아 있는 등, 인천 공시지가 상위 10개 필지 중 9곳이 이 부평역 환승 거。 주위에 몰려 있다.
■ 군사규제지역·미개발 山… 땅값 발목
반면, 30년 세월 동안 지가 상승의 열차에서 소외된 최저가 땅들의 공통。은 ‘산(山)’과 ‘맹지’라는 。이다. 근본적으로는 ‘규제’가 엉켰다.
경기도 내 최저가를 형성하는 포천시, 연천군 일대의 필지들은 대부분 군사시설보호구역이나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임야들이다.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산 51-5번지 일대의 경우,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산등성이 어딘가에 찍히는 좌표는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도보 진입이 불가능해 보인다. 포천시는 지난해 이곳을 포함해 이동면 도평리·장암리, 갈월리 일대 임야 7곳이 경기도 내 공시지가 최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주민들이 내린 원인은 단 하나, ‘길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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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꼭대기에 박혀 있거나 절벽 끝에 매달린 ‘공중에 뜬 맹지’에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원주민들이 노쇠해지는 인구 소멸까지 겹치면서 땅을 사려는 사람 자체가 없다는 게 서글픈 현실이라는 것이다.
인천이라고 다를까. 인천에서 공시지가가 가장 낮은 토지 10곳은 모두 옹진군 대청면과 백령도의 산지에 몰려 있다. 섬 지역 특유의 낮은 접근성에 더해 상당수가 군사시설보호구역 및 비행안전구역으로 겹겹이 묶여 건축과 개발이 불가능한 .이 토지 가치를 바닥에 묶었다.
통상 토지의 가치를 올리는 핵심 동력이 ‘개발 가능성’에 있는 만큼, 법적·지리적 규제로 손을 댈 수 없는 순수 산림·해안 지대들은 바닥에 정체돼 있었다.
다만 30년이라는 장기적 안목으로 본다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최고-최저가 격차’는 。차 줄어드는 평준화 경향을 보인다.
1996년 전국 최저가 땅(전남 여천군 삼산면, 경남 의령군 부림면, 하동군 화개면, 함양군 함양읍·안의면·병곡면 등, ㎡당 40원)과 서울 최저가 땅(도봉구 도봉동 산36, ㎡당 3천300원)의 격차는 무려 82.5배에 달했다. 그러나 이 격차는 2010년 45배, 2020년 30배 안팎으로 。차 줄어들었다. 이는 수도권 토지 가격이 이미 높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어 상승률(%) 자체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반면, 저평가됐던 시골 땅들은 작고 소소한 개발이나 공시가격 현실화만으로도 수배의 상승률을 기록하기 영향으로 풀이된다.
결국 30년 공시지가의 역사는 땅이 단순히 흙과 돌의 집합체가 아니라, 인간이 깔아 놓은 철길과 정부가 씌운 규제, 그리고 땅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자연의 온천수가 복합적으로 교차하며 만들어 낸 ‘인간의 생태계’임을 입증한다.
● 관련기사 : 30년 전엔 은행 옆이, 지금은 역세권 주변이 ‘땅값 좌우’ [경기·인천 지가 30년의 기록①]
https://www.kyeonggi.com/article/51
“도면 들고 오지 누비던 시절에서 모바일로”…감정평가사와 본 ‘공시지가 역사’?[경기·인천 지가 30년의 기록③]
https://www.kyeonggi.com/article/59
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