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김동률 콘서트 ‘오래된 노래’ 공연 모습. 뮤직팜엔터테인먼트 제공
완전한 암전, 기대 어린 객석의 고요를 깬 건 김동률의 목소리였다. 어떤 반주도 없었다. 오프닝곡 ‘겨울잠’의 첫 소절을 그는 담백한 음성으로 불러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꽉 채운 관객 3000여명은 일순간 숨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꽃가루가 눈처럼 흩날리는 무대 한가운데 우뚝 서서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더없이 근사했다.
가수 김동률이 데뷔 33년 만에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편성이 없는 콘서트로 관객을 만났다. 지난 17~19일과 22~25일 총 7회에 걸쳐 진행된 2026 김동률 콘서트 ‘오래된 노래’다. 그의 세종문화 공연은 7년 만이다. 철두철미한 계획형 완벽주의자인 그답게 이번 공연은 2년 전부터 준비했다. 지난해 KSPO돔에서 연 ‘산책’ 콘서트와 한 쌍으로 기획해 셋리스트도 서로 겹치지 않게 구성했다.
2026 김동률 콘서트 ‘오래된 노래’ 공연 모습. 뮤직팜엔터테인먼트 제공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공연의 시그니처인 그에게 이번 무대는 도전이었다. 단출한 밴드 편곡과 목소리로 2시간 반이 넘는 공연을 오롯이 채웠다. 김동률은 “오케스트라 없는, 밴드만으로 이뤄진 공연을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었다”며 “이런 시도가 타협이 아닌 음악적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 낯설어도 그만큼 특별한 공연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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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변화가 오랜 팬들에겐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극장 공연 때마다 오프닝을 담당한 곡 ‘그림자’는 이번에 두 번째 순서로 배치돼 가슴 저릿한 감흥을 끌어올렸다. 공연 타이틀인 ‘오래된 노래’는 바이올린·첼로·클라리넷 3중주 편곡으로, 가수 이소라에게 선물했던 김동률의 자작곡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는 기타 편곡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2026 김동률 콘서트 ‘오래된 노래’ 공연 모습. 뮤직팜엔터테인먼트 제공
오케스트라가 빠지면서 무대연출의 물리적 제약이 사라진 덕에 한층 과감한 시도가 가능해졌다. 하이라이트는 무대를 한가득 채운 푸른 밀밭이었다. 서정적 분위기의 ‘여름의 끝자락’ 도입부가 흐르면서 막이 걷히고 드넓은 밀밭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 객석에선 탄성이 번졌다. 이 노래를 만들 때 김동률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풍경을 무대로 구현한 거라고 했다.
이어진 ‘문라이트(Moonlight)’ 무대에서는 피아노가 밀밭 한가운데에 놓였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듯한 조명 연출이 아련한 느낌을 더했다. 김동률이 밀밭 속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그 순간의 황홀경은 내내 벅찬 잔상으로 남았다. 노래를 마친 김동률은 “어쿠스틱한 공연에는 아날로그 연출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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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땀 한 땀 모내기하듯 밀을 심었다”며 웃어 보였다.
2026 김동률 콘서트 ‘오래된 노래’ 공연 모습. 뮤직팜엔터테인먼트 제공
‘율밴’(김동률 밴드)은 오케스트라 못지않게 풍성한 연주로 훌륭한 공연의 한 축을 완성했다.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를 필두로 탱고 스타일로 재탄생한 ‘뒷모습’ ‘낙엽’도 인상적이었다. 1막의 마지막 곡 ‘떠나보내다’는 환상적 화면 연출로 이목을 사로잡았다. 꼿꼿하게 노래하는 김동률의 뒤편으로 수많은 별빛이 쏟아지고 또 휘몰아쳐 마치 우주 속 공간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2막에선 대중적인 히트곡과 비교적 덜 알려진 명곡을 적절히 섞은 선곡이 이어졌다. 이상순과 함께한 베란다 프로젝트의 ‘바이크 라이딩(Bike Riding)’ ‘기필코’, 클래지콰이 멤버 알렉스에게 준 2011년 자작곡 ‘같은 꿈’을 편곡해 색다른 느낌으로 불렀다. 여행 예능 단골 인기곡 ‘출발’과 김동률표 발라드 ‘그건 말야’ ‘취중진담’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이어지며 공연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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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노래는 그 자체로 완벽한 감동을 선사했다. 밴드 연주, 아니 피아노 반주만으로도 충분했다.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부른 ‘다시 떠나보내다’ ‘귀향’ ‘그 노래’가 벅차오르는 여운을 안겼다. 그가 온 힘을 다해 노래한 앙코르곡 ‘동행’의 가사는 더 깊은 위로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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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조금 더 나을 거라고/ 나 역시 자신 있게 말해줄 순 없어도/ 우리가 함께하는 오늘이 또 모이면/ 언젠가는 넘어설 수 있을까.’
음악을 향한 그의 지극한 정성은 관객이 그에게 변함없는 지지와 사랑을 보내는 이유다. 김동률 공연은 매번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 끝에 매진 사례를 빚는데, 7회 총 관객 수가 2만1000여명에 불과한 이번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예매 경쟁이 더 치열했다. 김동률은 “제가 극장 공연으로 돌아온다고 하면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반응을 보니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 했냐’며 화가 많이들 나셨더라. 여러분의 마음을 잘 안다. 저도 조성진 공연 티켓팅을 매번 실패한다”며 웃었다.
“데뷔한 지 30년이 훌쩍 넘은 저에게 ‘더 큰 공연장에서 공연해달라’ ‘회차를 늘려달라’고 화내시는 게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이냐”며 장난스럽게 얘기하던 그는 이내 표정을 굳히고는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도 있다. 부화뇌동하지 않고,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것과 다른 의미의 주제 파악을 잘하며, 늘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신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잡기 힘들 때가 있어요. 음악의 정의와 역할이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휩쓸리지도 들뜨지도 않으며 저만의 속도로 저답게 묵직하게 음악을 해나가려 합니다. 언제 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많이 고민하고 정성을 가득 들인 결과물로 돌아오겠습니다. 우리 조금만 더 늙어서 곧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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